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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재와 사도들의 방언은 다른가?

능력교회 2011. 2. 18. 17:48

[방언 그것이 알고 싶다Ⅱ ③] 현재와 사도들의 방언은 다른가?

 

▲김동수 교수©뉴스미션
일전에 필자가 발제한 방언에 관한 세미나에서 어떤 지성적인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가족 중 아내와 성인이 된 아들이 다 방언을 체험했는데 가족 중 자신만 방언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방언에 대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선뜻 마음을 열기 어렵다고 한다. 자신도 성경에 나오는 방언은 인정하지만 신약 성경에 나오는 방언이 현대 교회에서 지금 하는 방언과 같은 종류의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위와 같은 의문을 필자는 여러 차례 들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이렇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의 방언은 본토어로 말하여도 모든사람들이 알아 듣는 외국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교인들이 하는 방언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언어가 아니라 부호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의 방언과 우리의 방언은 다르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언어인 것이다.

하지만 위 주장은 방언에 관한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꿰뚫어보지 못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우선,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이 실제 언어였는지, 부호였는지, 아니면 듣는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들은 것인지 논란이 된다. 말하는 기적과 듣는 기적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도 대부분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실제 언어였을 가능성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성경에 신앙적 기적은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지 구경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사도들과 제자들이 외국어로 말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자 자신은 그것이 외국어인지 부호인지 구별하지 못했을 것이고, 또 그것을 계속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서 말을 하니 온 지역 말로 들었다는 것이 방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행 2:4) 방언을 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언이 외국어였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방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듣는자가 자기의 지역 말로 들었다는 것이다.

또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말하는 방언이 실제 언어가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극소수의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것을 실제 언어가 아니었다고 본다. 바울이 정의한 대로 이 방언은 영으로 말하는 것이고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고전 14:2).

다만 통역의 은사가 임하면 그 때 일시적으로 하나님이 그 뜻을 공동체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지금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는 방언 현상이 바로 이런 방언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로 자신의 혀의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혀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교회에서 하는 방언과 초대 교회에서 하는 방언이 왜 불연속적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바울이 말하는 방언은 교회 시대에 그칠 신학적 이유가 없다. 성령의 역사로 알 수 없는 말로, 기도ㆍ찬양ㆍ감사ㆍ축복으로서의 방언이 현대에도 그대로 필요한 것이다.

기도와 찬양과 감사와 축복은 사도들 혹은 초대교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의 신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누가의 방언에 있어서도 사도행전 2장 이후에 나오는 방언 현상에 대해서 그것이 실제 언어라는 뉘앙스는 별로 없다. 현재의 방언은 분명 하나님과 기도 자와만 아는 방언이며, 초대교회에 전도하기위해 듣는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하는 방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 언어였는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 성령의 역사로 언어 기관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여기서 방언은 성령충만과 연관되어 있다. 성령충만의 결과 혹은 표시로 방언을 하게 된 것이다. 성령충만이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지금도 성령충만이 필요하다면 왜 방언은 필요 없다고 하는가?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말하면, 현대의 방언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방언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지만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 성령의 역사로 언어 기관이 성령의 지배를 받아 “다른 혀”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천년 전에도 기적이었고 지금도 기적이다. 이것은 인간의 연습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일어난다.

 누가에 의하면 방언은 성령충만의 한 결과다. 바울에 따르면 방언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께 기도, 찬양, 감사, 축복을 하는 것이다(고전 12:2, 15-17). 이것이 어떻게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방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도를 하기위해 해야하는 방언이 아니고 개인적인 체험이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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