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당신은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능력교회 2010. 8. 27. 11:24

"당신은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갈4장 21-31절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너희는 내게 말하라. 너희가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되기를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났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서 났고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이것들은 비유이니 이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이는 하갈이라.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니 지금의 예루살렘과 같아서 그녀는 자기의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기록되기를 "너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아, 즐거워하라. 너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여인아,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음이라."고 하였으니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런데 그때에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하였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느냐?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는 여종의 아들이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을 받지 못할 것임이니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로운 여자의 자녀로다.

 

 예수님의 수난(패션오브 크라이스트)이란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보았다고 이야기 하니까 아마 여러분도 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 영화를 보기 전에 많은 광고에서 볼 때 이제 것 나온 어떤 기독교 영화 보다도 가장 성경적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성경에 좀더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영화라는 호기심을 주기 위해서 인지 몰라도 예수님의 모습이 성경에 나와 있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 입니다. 주인공이라 그런지 너무도 잘생긴 모습이었습니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53장2절에 "그는 자라 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 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예수님은 얼마나 볼품이 없으면 사람들이 싫어 버린바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사단의 모습을 너무도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쳔들이 바로 알아야 할 것은 사단이 우리 눈으로 봐서 확인이 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 눈으로 확인이 가능 했다면 아담이 결코 범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들 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장 지혜롭게 생겼다는 뜻 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어떤 사람이 있는데 속은 어떤지 몰라도 겉 모습만은 너무도 인텔리 하게 생긴 그런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는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 하나니" 사단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광명은 예수님을 빛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사단이 마치 예수님의 빛처럼 보인 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7장 15절에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사단은 우리가 볼 때는 양 처럼 보인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쉽게 확인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세번째는 예수님의 수난 부분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 형을 받으면 납과 유리조각이 달려있는 채찍으로 형벌을 가해서 거의 반 정도는 죽이고 그 후에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게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좀더 리얼리티 하게 묘사는 했지만 두 강도는 너무도 멀쩡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고증을 보면 십자가형을 받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왜 그런 것을 자세히 기록해 놓치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수난을 어떻게 당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죄를 짊어 진 것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은 형틀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됩니다. 가능한 한 성경에 근접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이런 말씀이 너무 무미건조하게 전해질까 다른 한편 걱정도 앞섭니다.

제가 오늘 영화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는 종과 아들에 관해서 설명하려고 서론이 길었습니다. 종과 아들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두 사람이 맷돌를 갈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버려둠을 당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 또 이런 사람이 버려둠을 당한다. 각 사람이 자신의 신앙 관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이 버려둠을 당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낳고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인데 왜 이삭을 낳기 전에 첩을 얻어서 이스마엘을 낳도록 했겠습니까? 갈4장 24절에서 보면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 라"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종이 되고 어떤 사람이 아들이 되는가를 비유로 말씀 하시면서 지금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려고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 입니다. 영적으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면 그것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해서 구원을 얻으려면 그것은 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에 구원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아들인 것입니다. 종과 아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 라"  이 말씀은 이삭은 시내 산에서 안 낳고 이스마엘만 시내 산에서 낳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율법을 시내 산에서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적인 사람은 종이라는 것을 설명 하기 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얻으려면 그 사람은 종이 되고 약속으로 얻으려면 그 사람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통해서 얻겠습니까? 약속을 통해서 얻겠습니까? 갈4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약속의 자녀라는 것은 약속을 믿으면 틀림없이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만 믿으려 하지 않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무엇을 잘해서 천국에 가려고합니다. 그것을 가르켜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노력해서 가려는 사람은 종이고 약속을 믿고 가려는 사람은 아들입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약속의 자녀만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 드리지만 믿음에다 무엇을 첨가 해서는 안됩니다. 율법주의가 무엇이냐면 믿음에다 무엇을 첨가하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는데 율법을 붙여 놓으면 율법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은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30절에 보면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법에 따라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내어 쫓으라는 명령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가려는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지만 법에 따라 가려는 사람은 다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단 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꼭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보면 너무도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천국가는데 성경은 배제 시키고 꼭 필요한 요소를 정해놓고 자기들만의 특별함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단체는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려면 예수님의 품성과 같아야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품성을 닮기 위해 어떤 특정한 행위들을 요구합니다. 얼마전 삼일교회 시무하시는 전병욱 목사님이 예수님의 은혜로 믿기만하면 구원받는다는 설교를 하셨는데 어느 다른교회 장로님이 인터넷을 통하여 믿기만하면 구원받느냐? 전목사는 잘못된 말씀을 전했다고 비난하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누가 잘못알고 있나요? 장로님이 복음(福音)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거저 주어지는 것인데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것을 요구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성화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예수님의 품성과 같아 질수 있습니까? 저는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우리의 노력으로는 예수님의 품성에 다가 갈수 없다고 단정 지어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품성과 같아 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노력 보다는 성령께서 우리 삶 속에 개입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 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많은 곳에서 자기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 보다는 저 원수를 죽여주십시오. 저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내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을 할 때 자기 원수들을 갚을 것을 유언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나 그들에게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니 자기 손으로는 못죽이고 네가 내 대신 죽여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기도 합니까? 정말 싫은데도 원수를 용서해 주라는 주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정말 죽이고 싶어도 기도는 늘 주여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가 되겠습니까? 물론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되겠지만 때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단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좀더 솔직한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세상 사람과 같이 의문(儀文)에 순종 하느냐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의문은 율법이고, 돌에 기록한 계명이 의문입니다, 이 말씀은 법을 잘 지켜야 천국 갈 줄로 생각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법에 관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처리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법에 순종해야만 그것이 없어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빚이 있는데 형이 다 갚아 주었습니다. 갚아 주었는데도 그것을 안 믿고 내가 일을 해서 벌어서 갚으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벌어서 갚으려 한다면 형이 나를 볼 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빚을 갚아 주었으면 갚아 준 것을 아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내가 잘해서 갚으려 한다면 하나님은 기뻐 하시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고 갚으려고 노력 하는 것과 그것을 그냥 받는 것 어느것이 과연옳다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혜를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참 좋은 말 같지만 그것은 자기가 받는 은혜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1억씩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자신이 10억을 탕감 받았다고 생각하면 아마 갚으려고 노력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수십 조원을 탕감 받았다고 생각하면 갚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은혜로 받아 들일 것입니다. 천국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곳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노력도 하지말고 율법도 지키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법을 잘 지켜야 삽니까 못 지켜도 삽니까?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만 아버지하고 삽니까? 아버지와 사는 것은 법하고는 상관 없이 아들이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이 말을 잘 듣던 안 듣던 간에 자신이 낳았기 때문에 데리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하면 우리 아버지가 내 쫓을 것이다. 내가 잘못하면 호적에서 제하여 버릴 것이다. 자녀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아버지가 자녀들을 보면서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여러분들 모두가 어려서 부모에게 잘못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잘못했어도 결국은 집에 들어갑니다. 집에 들어가면 혼은 나지만 부모가 내쫓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육신의 부모 보다도 못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가 아닌데 그 아들이나 딸들이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를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자녀는 좀 이상한 자녀입니다. 아버지를 바로 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아들인줄 안다면 내가 잘못해서 야단은 맞을지라도 집에 들어가면 밥을 주고 쉬게 해준다는 것을 믿고 들어가는 것 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아들과 종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법을 잘못 지켜도 유업을 받습니다. 하지만 종은 법을 잘못 지키면 쫓겨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법을 잘못 지켜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연약 하여 법을 지키지 못했을 지라도 지옥간다 이런 생각을 버리시라는 것입니다. 법을 못 지키면 지옥 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종입니다. 아들은 실수로 법을 못 지켜도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은 법을 못 지키면 쫓겨 난다고 생각하면서 늘 불안해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실수를 해서 법을 어겼을 지라도 안 쫓겨 난다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종이고 하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을 보고 이삭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이스마엘 또한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둘 다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하나는 내어 쫓김을 당하고 하나는 그 집에서 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이것은 비유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적으로 아들 된 사람과 영적으로 종 된 사람의 차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집에 있으니까 다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두 사람이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하나는 쫓겨날 사람이고 하나는 집에서 함께 살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언젠가는 쫓겨나야 할 사람이 있고 같이 살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살 사람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는 법을 잘 지켜서 완전해 져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고 양자의 영을 받은 아들 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못 지키더라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종이 아니라 아들인 것입니다. 아들은 쫓겨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 마음 속에는 무엇을 조금만 잘못해도 지옥 갈까 걱정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옥갈까 걱정 하는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종입니다. 아들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되었으면 어떻게 됩니까?

 

 갈라디아서 4장 5-7절에 보면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 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러분은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당연히 유업을 이을 자 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라고 분명히 말씀 하고 있습니다. 아들인 사람은 천국 갈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죄를 범할지라도 우리의 죄로 인해서는 지옥가지 않는 다는 것을 믿으면 천국갈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인데도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에서 목말라 죽을 뻔했습니다. 목이 말라서 죽던 말던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지금은 아버지 아버지 하고 있지만 이스마엘과 같은 종으로서의 아들은 지옥에 가서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을보면 "너희는 그리스도께 속한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러분은 예수님께 속해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께 속해 있다고 해서 속해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다 받아 들여야 만 예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전부 가져 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뜻은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인 것입니다.

 우리를 죄 있는 상태로 구원 하는 것 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을 때 구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있는 상태로 구원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가 우리가 죄를 범하기 전입니까? 죄를 범한 후입니까? 우리가 낳기도 전에 우리 죄를 지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종이요, 하나는 아들입니다. 종은 율법에서 난 자라고 하면서 시내산에서 났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종은 계명을 잘 지키면 천국 간다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연약해서 계명을 범할지라도 아버지와 함께 산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율법과 복음이 같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요구하신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율법적인 의(義)를 통해서 믿음을 나타내려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30절에보면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자가 성령을 따라 난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어떻게 믿기만 해서 천국 가느냐면서 약속의 자녀들을 핍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17-19절에 보면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 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탕자의 비유를 보면 너무도 은혜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탕자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달았을지라도 만약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고 남이었다면 돌아 갈수가 있겠습니까?

 탕자는 비록 잘못을 했을지라도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돌아가면 자신이 야단을 맞을지라도 아버지께서 종으로라도 써주고 쫓아내지 않고 살게 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설령 잘못 했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된다고 믿는 사람은 아버지 집에 들어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들입니다. 아들인 사람은 탕자와 같이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집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만 기다리십니다. 죄를 먼저 용서하시고 돌아오기만 기다리십니다.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돌회(廻) 고칠개(改) 회개는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서 원점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회개는 단 한번입니다. 요즘 회개하라 외치는 것은 참회(讒懷)하라 하는 것입니다. 참소할 참(讒) 품을 회(懷) 죄를 품고있는 것을 참회하는 것입니다. 이 죄는 지옥 갈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아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아들이라면 나를 절대로 쫓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가짜 아들은 자신이 잘못하면 아버지가 용서를 안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낳은 아들은 수시로 잘못 하면서 매는 맞을지언정 쫓겨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쫓겨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율법으로 천국 가려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안쫓겨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들인 것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분명히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 인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입니다. 내가 아들인 것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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