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기도원에서 단상(斷想)
- 작성자: 이훈영
1.
지난 월요일 청계산 기도원에 올랐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추위가 다가왔음을 느꼈습니다. 기도원 입구 커피자판기 앞에서 나이 드신 목사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두 분 다 산기도의 베테랑으로 소문난 분들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유명하다는 기도원은 모두 섭렵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들이 대화 가운데 말씀하길, 한국의 기도원들 특히 장기금식을 강조하는 기도원들이 오늘날 크게 쇠퇴하고 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전에 수천 명씩 40일 금식기도자들이 배출되었던 유명한 기도원들이 지금은 문 닫았거나 부동산 매물로 나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전처럼 생명바쳐 기도하는 열정이 식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설 좋은 크고 유명한 기도원들도 찾아오는 성도수가 줄어서 고전하고 있다는... 그분들은 한국 기도원들의 실상에 관해 아주 박식했습니다.
왜 이같이 되었는가? 나는 60년대 이래로 한국 교회의 신앙 지도(地圖)를 변화시켰던 순복음의 삼박자구원 신앙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오직 주님을 소유하고 그분을 위해 내 생명을 전부 드리고 복종하는 헌신이 아니라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병 낫고 축복받는 것으로 가르치면서, 한국교회는 전같은 '거룩'과 겸손 희생보다는 세상적이고 가시적인 '성공'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 자신보다는 눈에 보이는 축복, 신유, 응답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포도나무보다 포도 열매에 더 눈을 팔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번영주의적 신앙 풍조가 반세기 동안 결실을 맺어서, 오늘날 한국은 세상적으로는 아주 잘사는 풍요의 나라, 준(準)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제3세계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신속한 근대화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한국의 성도들에게서 전처럼 문제해결이나 축복, 신유, 응답를 위해 애통하며 간절히 금식, 철야기도할 욕구가 썰물처럼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왜? 이제는 다들 먹고 살만해졌고, 생활의 편리와 재물이 넉넉하고 병원과 약이 많아져서 질병을 치유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궂이 전처럼 축복, 신유, 문제해결을 구하며 산에서 엎드려 금식하고 철야할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6-70년대 깊은 산에서 풍찬노숙하며 주님과 생명을 건 씨름 기도를 하던 한국교회의 기도 전통이 어느덧 소멸되어가고 있고, 그 결과 그같은 기도 전통을 힘입어 전국 각지에 세워졌던 수많은 풀뿌리 기도원들이 쇠퇴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편리하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부유하고 세련된 기도원만이 잘 된다고 합니다. 장기금식 대신 잘 먹고 잠시 기도하고 휴식하러 왔다 가는 기도원이 잘 된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더 이상 기도에 생명을 거는 부담을 원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2.
생각해보면 번영신학은 한국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50년대부터 미국의 오순절 계통의 부흥사들이 주장한 것으로서,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오랄 로버츠였고, 그의 3박자 구원론이었습니다(요일 2절). 순복음 조용기 목사는 이를 그대로 자기 목회에 도입, 한국교회에 이식한 것이었습니다.
본래 미국은 돈과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였으므로 하나님이 우리 모든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과 축복 행복 번영을 부어주신다는 신학이 당연 인기를 얻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극한 빈곤으로부터 경제개발을 하던 1960년대 이래로 번영신학은 당연 가난한 성도들의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강력한 은사, 신유를 동반한 순복음의 축복론은 거대한 추종자를 모았습니다. 그 결과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형통과 물질 축복 문제해결을 간구하면 그에 맞추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영적인 수준과 소원에 맞추어 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오늘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가장 급속한 발전을 이룬 대단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우리의 욕구 충족, 물질 축복이 영적인 쇄신과 각성의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욕심 달성을 추구하면 그에 응답하시지만, 그 영혼은 피폐해지도록 버려둔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시 106:15)
오늘날 한국이 이룬 거대한 물질적 번영은 과거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근면한 노력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도덕적인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온통 만연한 물질만능, 쾌락주의 풍조는 무엇 때문인가? 초등생까지도 오염시키는 인터넷 포르노, 게임 중독은 어떡해야 하는가?....
오늘날 한국은 멸망 직전의 소돔 고모라 못지 않게 타락하고 문란합니다. 한국의 도덕적 타락의 실상은 "거의 지옥과 같다"고 어느 목사님이 얘기하던데...
그리고 이를 정면으로 상대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세력이 없습니다. 정부도, 교회도 도도한 타락과 음란의 물결 앞에서 무기력하게 손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목하 한국교회가 이같은 한국사회 소돔화의 흐름을 돌이킬 힘은 없어보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세상의 세력이 밀려들어와, 금전 비리, 성적(性的) 타락 같은 온갖 부정 비리가 넘치고, 불신 세상의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전에는 한국 기독교가 세인들의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공연히 '개독교'라는 이름으로 비난당합니다. 지금처럼 전도가 힘든 시기는 한국에서 교회가 시작된 이래 일찌기 없었습니다...
3.
이와 같을 때 우리는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복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시적인 외형의 성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건물과 교인 숫자, 재산에 마음 쏠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라도 다시금 근원으로(ad fontes)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질축복의 부흥, 문제 해결의 부흥, 성공의 부흥만 추구하지 말고 오직 포도나무 되신 주님 한 분께로 온전히 돌아가는 부흥, 주님의 빛 앞에서 자기 죄악들을 돌아보아 철저히 회개하는 회개와 성결의 부흥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신학박사도 많고 부자도 많고 유력자도 많은 한국교회가 웅장한 예배당과 부동산이 차고 넘치는 부유하고 세련된 한국교회가 다시 베옷을 입고 바싹 낮아져서 애통하고 회개하고 정결해지는 회개와 영적 각성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부흥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정결해지고 새로와지지 않으면 숫적 부흥도 없습니다. 회개없는 한국교회는 점차 세력이 위축되고 줄어들어 마침내 형해(形骸)만 남은 선진 유럽교회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는 '신(神)의 무덤'이라고 불립니다. 우리 교회가 결국 그같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직 기회 있을 때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이 땅에 다시 영적 회개와 각성의 영을 부어달라고 애통하며 중보 기도합시다. 다시 처음 순수했던 믿음과 사랑을 회복합시다. 다시 주님 한 분만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돌아갑시다.
주님을 위해 핍박받고 고난당하고 모든 것을 잃고 죽어도 기뻐하는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옛 신앙 선배들의 근원적인 신앙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부디 청계산기도원에서 이같은 영적 대각성의 기도운동이 시작되기 바랍니다...ⓗ |